[2010.03.05 조선일보]
‘경영학계 아인슈타인’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 한국의 CEO들과 만나다
◎ 왜 이 기사를 읽어야 하는가?
‘경영학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리며 기업들에게 새로운 혁신의 개념을 전파해 온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M. Christensen) 하버드 경영대학원 석좌교수. 그가 지난 1월 IGM(세계경영연구원)의 3번째 경영대가 포럼의 주인공으로 나섰다. 크리스텐슨 교수가 100여 명의 CEO들을 대상으로 강연했던 ‘한국기업의 차세대 성장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크리스텐슨 교수는 강연 이후, 보다 깊은 논의를 위해 전성철 IGM이사장, 이상철 통합 LG텔레콤 대표이사, 송영길 민주당 최고위원과 한 자리에 모였다.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맺어온 크리스텐슨 교수가 전하는 한국 대표기업들에 대한 우려, 실업문제의 근원적 해법과 기업 성공을 위한 예리한 조언에 귀를 기울여보자. (편집자주)
제3회 IGM 경영대가 포럼- 크리스텐슨 교수 강연 따라잡기
IGM은 지난 2007년부터 글로벌 구루(Guru) 초청 강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에이미 에드먼슨(Amy C. Edmonson) 교수, 다보스 포럼 강연자이자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인 베인 앤 컴패니(Bain & Company) 대럴 릭비(Darrell Rigby) 보스톤 대표를 초청하여 CEO들에게 최신 경영지식을 전달한 바 있다.
IGM 경영대가 포럼의 3번째 주인공인 클레이튼 크리스텐스 교수. 그가 지난 1월 19일 이른 아침부터 1시간 30분 가량 한국 기업인들에게 열정적으로 전한 강연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다음은 크리스텐슨 교수의 강연을 내용별로 요약한 것이다.
- ▲ 크리스텐슨 교수 / IGM 제공
첫째, 파괴적 혁신이란?
혁신에는 존속적 혁신과 파괴적 혁신이 있다. 파괴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뭔가 엄청난 발전이라서가 아니라, 기술적인 발전의 속도나 발전의 선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별도의 사업본부를 만들어서 기존 시장을 지키며 계속 새로운 시장을 공략하라.
도요타는 소형자동차 시장부터 진출해 점차 하이엔드 시장으로 진출해 큰 성공을 거뒀다. 이익이 적고 덜 매력적인 시장부터 차근차근 진입해 기존 강자의 자리를 빼앗고 자기 자리를 키운 것이다. 이것이 파괴적 혁신이다. 그러나 지금 도요타는 현대기아차가 몰아내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이미 도요타의 소형차 시장을 다 잠식했다. 도요타도 아직 소형차를 만들지만 이미 대형차를 만들어 벤츠와 경쟁하고 있기 때문에 소형차 분야에서는 경쟁력을 키우지 않았다. 이후에는 인도의 타타와 중국이 한국을 추격할 것이다. IT업계에서는 클라우드 컴퓨팅이, 통신업계에서는 스카이프가 파괴적 혁신이 될 것이다.
둘째, 고객의 통합적 경험을 통해 시장을 이해하라
기업은 시장을 볼 때 제품군이나 고객군으로 나누어 본다. 그러나 고객 입장에서 보면 다른 관점으로 보인다. 고객입장에서는 매일매일 어떤 일들이 우연히 일어난다. 갑자기 어떤 일이 생기고 그로 인해 제품을 산다. 고객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해야 하는 일을 이해해야 한다.
맥도널드가 밀크쉐이크 산업을 발전시키려면 고객이 왜 밀크쉐이크를 주문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알아야 한다. 18시간 동안 고객들을 관찰하고 물어본 결과 그들은 출근길 운전하면서 밀크쉐이크를 사 갔다. 아직 크게 시장하지 않지만 운전하면서 심심하지 않게 하고 속을 든든히 채울 수 있었다는 것. 또한 다른 패스트푸드에 비해 건강에 더 나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고객을 이해하려고 할 때 고객의 의도가 여러 가지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이런 상황을 보다 잘 이해하고 나면 그 부분에 있어 필요한 개선을 꾀할 수 있다. ‘출근길에 마시는 음료수’라는 개념을 적용한다면 조금 더 걸쭉한 음료 컨셉을 가미하거나 작은 과일조각들을 넣어 다양한 맛을 추가해볼 수 있다. 출구 쪽에 밀크쉐이크만 살 수 있는 코너를 만들어 빨리 살 수 있게 하는 등 효과적인 혁신이 가능하다.
고객이 제품을 구매해 사용하면서 얻을 수 있고, 하고자 하는 경험에 맞춘 디자인을 하게 된다면, 고객이 그 경험을 하는 데 있어 필요한 제품 개발을 할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제품은 모방하기가 매우 쉽다. 새로운 디자인, 사양이 등장하자마자 경쟁사들이 쉽게 카피한다. 올해 LG에서 3D TV를 발표하겠다고 하는데, 일본 중국 등이 이미 추격하고 있다. 단순한 제품만 만든다면 프리미엄을 갖기 어렵다.
가구 소매유통 시장에 커다란 파괴를 일으킨 IKEA를 40년 동안 많은 기업들이 모방하려 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IKEA의 제품이 아주 특별해서가 아니다. IKEA를 카피하지 못한 이유가 뭘까? 접근법이 달랐기 때문이다. IKEA는 고객이 어떠한 경험을 하고자 하는지에 주목했다. 내일 만약 내 아들이 새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어 아파트에 채워 넣을 가구를 찾을 때 IKEA를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가구에 카페트, 그림, 부엌 소품까지 다 팔고 있고 쉽게 가져갈 수 있게 박스 포장되어 직접 조립하게 한다. 아이들 놀이방도 갖춰져 있고 간단한 스낵도 팔아 쇼핑하다 쉬고 먹을 수 있다. IKEA는 이러한 통합적 경험을 제공해 경쟁자들로부터 우위를 지켜내고 있다.
셋째, 아직 소비가 이뤄지지 않은 비(非) 소비시장에 접근하라
기존에 확립되어 있던 시장보다는 아직 소비가 이뤄지지 않은 비소 비시장에 접근하는 것이 나은 방법일 수 있다.
혁신적 회사들이 파괴에 대처하며 겪는 문제들이 많다. 어떻게 하면 한국 기업들이 지금과 같은 주변 상황에도 불구하고 잘 헤쳐갈 수 있을까? 우리가 몸담고 있는 시장보다 규모가 작은 시장은 지금은 빨리 성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가장 큰 기회를 가지고 있는 시장은 아직은 존재하지 않지만 파괴를 통해 만들어질 수 있는 신규 시장이다.
진공관 시대를 접고 트랜지스터 시대를 열었던 소니에서 배워라. 소니는 기존의 소비자들을 얻어내기 위해 투자하지 않고 새로운 고객, 기존에 소비가 없었던 비소비시장을 공략해 시대를 바꾸고 성공했다. GE는 의료기기에 대한 혁신을 유럽, 미국에서만 하지 않고 인도에 새로운 비즈니스 유닛을 만들었고, 이를 교두보로 삼아 글로벌 시장으로까지 진출해 크게 성공했다.
넷째, 한국경제에 대한 조언
첫째, 현대, 삼성, LG 등 대기업의 총수들이 파괴적 혁신 모델을 보다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 동안 우리 회사가 위대해질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 한국 기업들은 처음에는 low-end 시장에서 시작해 성공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위대함의 이유를 제대로 알면 새로운 사업부, 기업들에서 low-end 시장부터 다시 성공을 잡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다섯째, 최선을 다해 아주 활발한 기업가 정신을 더욱 독려해야 한다
실리콘밸리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었는데 실리콘밸리의 성공적인 회사 다수가 인도, 중국, 한국, 러시아인 등에 의해 창업되었다. 그들이 미국에 유학 와 석사 박사 학위를 하다가 회사를 세울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들을 갖게 됐고 훌륭한 인프라를 갖춘 실리콘밸리에서 그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미국인이 훌륭한 기술자, 창업 기업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세계의 많은 인재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인프라와 동인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이 새로운 성장의 물결을 만들고 기업가 정신을 독려하려면 이 모든 것을 한국인이 다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서울대, 연대 등의 학교들이 인재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매력적인 학교가 되고, 타국에서 온 인재들이 기업을 한국에서 창업하고 싶다 느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쉽지 않지만 가능한 일이다. 싱가폴이 한국보다 더 잘할지 모르겠지만 배타적인 일본보다는 가능성이 크다.
한국 경제가 추락한 일본을 뒤쫓을 것인지 더 큰 성장을 할 것인지는 한국의 기업가 정신에 달렸다. 소니, 도요타, 캐논 등 일본 기업들은 시장의 가장 아래 단계에서 시작해 미국, 유럽의 기업들을 몰아내고 정상에 올랐고 일본 경제를 키웠다. 그러나 경쟁의 맨 윗부분에 올라온 후 이제 갈 데가 없어졌다. 일본을 파괴한 나라는 한국, 대만, 싱가포르이다. 80년대에 한국 경제가 막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삼성이나 LG도 질이 별로 좋지 않았었다. 그 이후 훨씬 세련된 제품들을 만들면서 한국 경제가 발전했다. 이제 한국이 걱정해야 하는 것은 인도와 중국의 회사들이다.
일본이 미국을 파괴했을 때 미국은 어떻게 극복했을까? 미국에서는 제조기업들이 점점 더 덩치를 줄이고 직원수를 줄였다. 기업가 정신을 가진 소규모 벤처회사들이 늘어났고 결국 미국이 살아남았다. 그러나 일본은 기업가 정신이 없어서 최고에 올랐을 때 더 이상 무얼 하지 못했다. 대만 사람들은 명함을 2개씩 갖고 있다. 지금 하는 회사와 앞으로 창업할 회사 이렇게 두 곳이다. 기업가 정신이 충만한 대만은 크게 걱정되지 않지만 한국은 일본과 비슷하여 걱정이 된다. 지금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전성철 IGM(세계경영연구원) 이사장(이하 전성철): 오늘 강연이 많은 기업인들에게 아주 유익했던 것 같다. 많은 기업인들이 크리스텐슨 교수님 이론의 실천가인 것 같다. 귀한 시간을 내어 주셔서 감사드린다.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스 교수(이하 크리스텐슨): 오늘 참석한 전문가들에게는 강연 시간이 짧아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아 아쉽다. 초청해주셔서 감사드린다.
이상철 통합 LG텔레콤 대표이사 부회장(이하 이상철): 중요한 것은 파괴적 혁신이 얼마나 성공하느냐라고 생각한다. 많은 기업들이 교수님이 말하는 파괴적 혁신을 저마다 시도한다. 파괴적 혁신을 시도하는 기업이 과거의 유산에 매달리는 기업에 비해 성공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파괴적 혁신을 시도하는 기업은 무수히 많다. 수많은 파괴적 기술 속에서 누가 마지막 승자가 될지 궁금하다.
- ▲ 크리스텐슨 교수 / IGM 제공
파괴적 혁신을 위한 3가지 방법은?
크리스텐슨: 첫 번째로 명심할 것은 내가 영어 단어 'disruptive'를 여기에 사용한 것이 실수였다는 점이다. 'disruptive'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파괴적 혁신’을 급진적이고 새로운 기술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내가 의도한 뜻이 아니다. 단순한 목적을 추구하는 기업들의 전략에서는, 성공을 위해 딱 한 가지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 당신 회사가 경쟁자들을 사라지게 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성공을 보장하진 않지만, 성공 요인은 될 수 있다.
두 번째는 태양 에너지에 대한 내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태양 에너지는 잠재적으로 파괴적인 기술이다. 만약 주류에서 벌어지는 경쟁이나 현재 가장 각광받는 기술을 목표로 하지 않으면, 비소비(non-consumption)보다 훨씬 더 낮은 성공가능성을 갖게 된다. 좋은 예는 의료장비이다. 크기가 작고 가격이 저렴한 MRI는 미국, 유럽, 한국, 일본과 같이 큰 MRI 기계를 구입 할 수 있는 시장에서는 인기가 없다. 하지만 인도, 베트남, 필리핀에서 이 MRI기계는 “엑스레이보다 훨씬 좋은 장비구나. 사자”와 같은 반응을 얻는다. 새로운 기술을 가졌다면 저가 시장부터 진출해야 한다. 제품의 목표 고객층이 누구인지 파악하는 것이 새로운 기술을 가진 기업이 유념해야 할 두 번째 사항이다.
세 번째는 소비자가 상품으로 하려는 일(job)을 파악해서 이를 반영하는 것이다.
내가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앞서 말한 경쟁자가 없어지는 파괴성, 저가 제품으로 공략할 수 있는 비소비층, 제품이 소비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이 세 가지만 제대로 성공시킨다면 파괴적 혁신의 성공확률은 80%나 된다.
- ▲ 이상철 통합LG텔레콤 부회장 / 조선일보DB
이상철: 난 기술 관련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데 한국의 소비자들은 매우 수준이 높고, 어떤 측면에선 매우 까다롭다(spoiled)고 할 수 있다. 단순하지만, 파괴적인 기술이 까다로운 소비자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성철: 비소비(non-consumption)층에게는 저가 제품들이 잘 팔릴 것 같다.
크리스텐슨: 내가 지금 이 종이에 도전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당신의 회사는 계속해서 최신단말기를 생산해 내고 있다. 소비자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저가 휴대폰을 보유한 중국, 베트남의 소비자들은 이젠 더 좋은 기능의 제품을 원하고 더 낮은 사양의 제품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바로 까다로운 소비자이다. 이러한 소비자들이 중국이나 인도, 필리핀 등에서 배양된다면, 기술은 점점 더 발전한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가전 제품 박람회에서 중국인들이 만든 3DTV를 보았는데 정말 놀라웠다.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기술이지만 중국 업체들은 하위 단계부터 상위 단계로 발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상철: 당신이 말한 것이 맞다. 한국 소비자의 80%가 까다로운 소비자이다.
크리스텐슨: 난 당신 회사에게 이렇게 조언하고 싶다. “단순히 제품을 팔아선 안 된다. 적어도 다섯 가지 일을 생각해내라”. 블랙베리가 이렇게까지 대성공을 거둔 이유는, (물론 언젠가 추락할까 우려스럽긴 하지만) 짧은 시간을 생산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만드는 ‘일(job)’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 점이 경쟁업체들이 블랙베리를 따라잡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게 했던 것이다. 또 휴대폰업계에서 할 수 있는 다른 일은 10대들에게 친구가 되는 것인데, 이를 모든 시스템을 갖춰 통합적으로 완벽히 해낸 곳은 여태까지 없었다. 내가 당신이라면 고객이 원하는 ‘일’을 찾겠다. ‘제품’이 아니라 제품이 제공하는 ‘일(job)’ 에 포커스를 맞추어야 한다. 밀크쉐이크 이야기를 생각해보라. 밀크쉐이크의 종류를 늘리고 제품을 개선시키는 것이, 매출이나 수익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전성철: 잘못된 방향으로 개선하고 있었다.
크리스텐슨: 맞다 바로 정확하게 그것이다. 출근하는 사람들을 위한 밀크쉐이크의 일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맥도널드는 출근하는 길에 밀크쉐이크를 즐길 수 있도록 계산대 앞에 자동 머신이나 편리한 지불 시스템을 설치했다. 버거킹 같은 회사는 제품의 ‘일’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에 이러한 통합된 경험을 제공하기 어려웠다. 제품이 아니라 그들이 하는 ‘일’에 집중하라. 휴대폰 업체들도 제품이 아니라 일에 대해 연구한다면, 일이 제대로 상품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이상철: 그게 바로 애플이 한 것이다. 사용자 중심의 인터페이스를 도입했다. 그러나 애플의 시스템은 다른 기업보다 발전했지만, 오픈 소스는 아니었다. 결국에는 표준화된 시스템이 우세할 것이다.
- ▲ 송영길 의원 / 조선일보DB
기업뿐 아니라 사회도 ‘파괴적 혁신’필요하다
송영길 의원(이하 송영길): 난 정치가이다. 전 세계적으로 실업문제가 심각하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혁신이 일어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 혁신기술의 도입은 불가피한 사안이고, 문제는 어떻게 예전의 일자리들을 대체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것인가라고 생각한다. 교수님의 파괴적 혁신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가? 그리고 사라지는 일자리만큼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수 있는가?
크리스텐슨: 우리는 이 문제를 다른 책에서 언급했었다. 그러한 계층을 ‘파괴적인 계층(disruptive class)’이라고 불렀다. 이 책은 혁신연구를 통해 미국의 교육 시스템을 진단해보자는 의도였다. 왜냐하면 학교 개혁을 위한 노력의 핵심은 결국 혁신의 문제와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그 책을 집필할 때 바탕이 된 생각이 송의원이 한 질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82년은 일본 경제가 급속히 성장한 후 미국경제가 극심한 타격을 입었던 해다. 당시 미국 대학 신입생들의 시험 점수를 분석했더니, 미국 학생들의 점수가 매년 떨어지고 있었다. 그 전까지는 이런 적이 없었다. 이유를 조사해보니 대학에서 수학, 과학, 공학을 전공하는 미국 대학생 수는 일본 대학생 수의 1/4에 불과했다. 전체 인구는 미국이 일본의 3배였다. 이 연구의 제목은 '국가의 위기'였고 1982년에 출간되었다.
그때는 왜 일본이 성공했는지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파괴적 혁신 때문이었다. 연구에서는 일본의 성공 이유가 미국인들보다 일본인들이 더 뛰어난 공학자이고 과학자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제 현재 이야기를 해보면 지난 30년간 미국은 학생들에게 수학, 과학, 공학 교육을 강조하고, 대학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달라진 점은 전혀 없다.
나는 연구를 하면서 실리콘 밸리의 창업자들과 그들의 자녀와 손자, 손녀까지 대부분 잘 알게 됐다. 실리콘밸리 설립자들은 전부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자이거나 과학자이다. 물론 대다수가 미국 국적이 아니다. 그런데 그들의 자녀들은 아무도 수학과 공학을 공부하지 않는다. 그 자녀들은 오히려 그리스 철학이나, 아시아 방법론 이런 것을 배우고 있다. 사실 실리콘밸리 창립자들은 매우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들은 수학과 기술, 과학을 배우는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인 것을 알아, 참아냈고 성공했다. 이제 그들의 자녀들은 그러한 고통 없이 번영을 누릴 수 있는데 자녀들에게 왜 그런 고통을 느끼게 하고 싶겠는가? 다른 재미있는 공부가 얼마나 많은가.
지금 수학과 과학, 공학을 전공하는 일본 대학생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이제 이 영역에서 뛰어난 인재를 보유한 국가는 인도와 중국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첫번째는 번영이다. 번영은 교육을 방해하는 적이다.현실에 안주하도록 만든다. 우리는 학생들이 이 과목들에서 재미를 느끼고 관심을 갖게 해야 하며, 의무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이러한 노력이 없었다. 기계 공학으로 유명한 듀크 대학을 예로 들어보자. 이 학교에서 기계 공학을 공부하려고 입학한 나의 장남은 전공필수과목인 수학과목을 신청했다. 그런데 교수가 학기 시작에 학생들에게 말하기를 “학기말에 당신들이 2/3 가 수업을 취소할 것이라고 장담한다”고 한 것이다. 마치 교수가 학생들이 학습 의욕을 꺾어버리는 것이 목표인 듯 “이 수업은 매우 어렵고, 지루하다. 여러분은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실 공학 문제는 수학을 응용해서 흥미롭게 풀어내는 과정이다.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 진다면 미국과 한국의 부유한 학생들도 공학 공부가 하고 싶어질 것이다. 나는 미국의 미래가 정말 걱정된다. 미국으로 이민 온 많은 인도인과 중국인들이 미국에서 미국인들보다 더 좋은 직업을 얻는다. 지금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송영길: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지금 실리콘 밸리 구성원 중 미국인의 비율이 낮은 상황을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크리스텐슨: 현재 미국은 이민법을 강화해서 사람들을 국외로 내몰고 있다.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재미있고 간단한 답이 나올 수 없다.
- ▲ 전성철 IGM 이사장 / IGM 제공
전성철: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의 번영이 가능했던 이유가 한국으로 외국자본, 외국인 이민자들이 유입되었기 때문이란 점이다. 또, 한국이 벤처 기업을 육성할 만큼의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일본에선 기업가 정신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한국에서 지난 30년간 웅진, STX 2개의 기업을 제외하고는 그룹사가 탄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STX는 합병에 의해 생겨났고, 웅진만이 독자적으로 성장한 그룹사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기업가 정신의 부재에 대해 걱정한다. 기업가 정신이나 제도적 틀이 있어야 많은 기업가들이 생겨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기업가 정신의 부재를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크리스텐슨: 시스코, 루센트, 화웨이를 생각해보라. 시스코는 위기가 왔을 때 이 위기를 인식하지 못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한국은 위기에 처해 있지만 아무도 인식하지 못한다. 정치인이나 재계 지도자들이 이를 인식하도록 우리는 어떻게든 도울 것이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10년 내에 위기가 발생할 것이다. 성장세인 산업 덕분에 한국 경제는 유지되겠지만, 지금부터 노력해야 한다.
전성철: 당신을 비롯한 서양의 시각은 한국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가?
크리스텐슨: 난 한국을 사랑한다. (웃음) 낙관적인데 왜냐하면 나는 미국에서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할 지 아는, 그리고 잘하는 기업들을 많이 보았다. 한국 경제에 대해 낙관적이긴 하지만 삼성과 같은 기업에 대해 걱정이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계속 성공해온 경험 때문에 앞에 놓여있는 위기에 대해서 깨닫지 못할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경우에는 앞으로 개척할 시장이 많지만, 현대중공업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현대중공업은 LNG탱커를 생산하는 세계 최고의 기업이다. 현대중공업은 머지 않아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리더들이 이 상황을 깨닫고 GE가 위기 앞에서 했던 방식대로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송영길: 아시다시피 경제위기로 인해 전세계 모든 GM의 네트워크가 축소되고 있다. 3~5년 이후에 한국에 있는 지사도 경쟁력이 떨어져 다른 나라로 이전되고 우리 국민들이 일자리를 잃을까 걱정이다. 또 다른 문제로는 지적재산권 문제가 있다. 산업은행은 GM대우에게 대출의 전제조건으로 R&D 부문의 투자를 늘릴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GM대우가 신차를 개발한 뒤, 해외로 회사가 이전되면, 대우는 새로 개발한 기술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주장할 수가 없다. GM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 지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교수님은 GM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예측하고 있고,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GM대우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듣고 싶다.
크리스텐슨: 사실 그 부분은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GM을 포기하겠다. 현재의 경영난을 해결하고 도요타처럼 비용절감에 성공한다 해도 GM의 재정 상태는 좋지 않다. GM의 위기는 비용절감이 아닌, 더 많은 수익창출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 이는 고객들이 비싼 가격의 제품도 기꺼이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을 생산해낼 때 가능하다. 와그너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이미 GM을 떠났다. 현재 경영진이 잘 해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GM대우의 경우는 굉장히 흥미롭다.
아까 LG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독점 구조에서 개방형 표준 구조로의 변화에 대해 언급했다. 개방형 표준 구조에서는 제품의 차별화가 사라진다. 델 컴퓨터를 생각해보라. 각각의 모듈과 부품은 다른 회사에서 온 것이지만 부품을 조립하는 방식은 전체 컴퓨터 업계에 표준화되어 있다. 그러므로 델사가 경쟁사와 차별화되는 제품을 출시하기 어렵다. 델사가 더 나은 부품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컴퓨터라는 구조 차원의 혁신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개방성(openness) 혹은 모듈화(modularity)가 일어나서 가치사슬(value chain)의 일부분이 일반 상품처럼 표준화되면(commoditize) 타사 제품들도 이와 똑같이 하기 때문에 차별성은 사라지고 높은 수익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이 상황이 사라지기를 바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가치사슬에서의 다음 단계가 비표준화(decommoditize)이기 때문이다. 델의 수익은 점점 줄어들지만,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는 더욱더 차별성을 띠고 더 많은 매출을 올린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로엔드 마켓에서 시작하는 것은 상당이 이익이 될 것이다. 이 단계의 자동차는 모듈화되어 있고 핵심 기능만 필요하다. 부품 제조업체가 제공하는 서브시스템이 큰 가치를 창출한다. 그러므로 차체가 아니라 서브시스템을 통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서브시스템 기술은 독점되고 최적화되기 때문이다. 인텔사의 경우처럼 서브시스템이 차의 성능을 결정짓는다.
GM대우의 전략은 이에 가깝다. 내가 전략을 제대로 이해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GM에는 ‘온 스타’라는 위성시스템 서비스가 있다. 한국에서도 이용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차량 내부에 컴퓨터와 연결된 1500개의 센서가 있는데 차에서 위성으로 신호를 보내면 이 신호가 디트로이트의 중앙 센터로 전달된다. 이러한 기술들을 잘 알아두면 도움이 될 거다. 자동차 사고가 나면 바로 차량의 센서가 사고와 정확한 사고지점에 관한 정보를 중앙 센터로 전달한다. 그럼 센터에서 이 사고 차량으로 전화를 걸어 운전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경찰과 병원에 연락해서 충돌이 일어난 방향, 탑승 인원 등의 정보를 알린다. 그리고 센터측은 사고 차량에게 “전화를 끊지 말고 그대로 있어라. 4분 내로 경찰이 도착할 예정”이라고 말한다.
- ▲ IGM 제공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매달 개인 차의 상태에 대한 이메일을 받는다. 이메일을 통해 차량의 어느 부분이 잘 작동하는지, 언제 엔진 오일을 갈고 브레이크를 교체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또 이 시스템에는 놀라운 도난방지 보호기능도 있다. 누군가 차를 훔치려고 하면 위성 시스템은 이를 탐지한다. 이를 보고받은 센터는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현재 차량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린다. 그리고 차 안의 도둑에게도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한다. “지금 당신이 차를 훔친 사실을 알고 있으며 4분 내로 경찰이 도착할 예정이다. 우리는 이 차량의 엔진을 끌 것이므로 20초 내에 길가에 차량을 세워라. 차량의 문도 잠길 것이므로 도주 가능성은 배제하는 것이 좋다.” 이 시스템이 온스타(On Star)이다.
크리스텐슨: 올해 온스타로 인한 매출만 40억 달러에 달하고, 순수익은 1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자동차 회사에겐 순자산이다. 일반화되는 기술이 있는 반면에 이러한 기술은 비표준화(decommoditize)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선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비표준화된 시스템은 고객의 선택사항이다. 온스타 같은 경우 매달 25달러의 비용이 든다.
송영길: 최근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을 만났는데, 대우가 새 합작회사를 구해야 한다면 삼성이 좋을것 같다고 말했다. 자동차의 부품 상당수가 전자제품이다. 삼성의 최첨단 전자 기술과 GM의 제조업 기술이 결합되면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거라고 생각한다.
크리스텐슨: 그렇게 된다면 GM대우는 GM의 핵심이 될 것이다.
전성철: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지만 시간상의 제약과 교수님 건강상의 문제로 대화는 여기서 마쳐야겠다. 오늘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더 많은 CEO들이 교수님의 강연을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 또 다른 기회에 모시고 싶다. 좋은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하다.
크리스텐슨: 불러주셔서 감사하다.
정리: 홍미영 IGM 전임연구원/ 오지영 IGM 주임연구원

